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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떠도는 한 톨의 먼지처럼 세상에 나 혼자인 듯했다. 동생이 떠난 후 강원도에 있는 ‘남강애육원''으로 가게 됐다. 그곳은 더 이상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춥지도 않았지만 동생 생각으로 늘 쓸쓸했다. 간식을 먹을 때나 구슬치기를 할 때마다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동생이 곁에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을 텐데…'' 내 생애에서 가장 쓸쓸했던 시간이었다. 동생이 지금 한국 어느 곳에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난 세월 하루라도 동생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부모보다 동생을 더 그리워했다.

남강애육원에서 몇 개월을 지내다가 다리수술을 받기 위해 경기도 고양에 있는 ‘홀트양자회''(홀트아동복지회)로 가게 됐다. 홀트에서의 생활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다. ‘해리 홀트 할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됐고 가족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됐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고아인 신진남이란 아이와 형제처럼 지냈다. 나이도 동생과 똑같아서 진남이와 있으면 동생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미국인 해리 홀트 할아버지는 부인 버사 홀트,딸 말리 홀트와 함께 한국의 집없는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홀트 할아버지는 미국 오리건주에서 큰 제재소를 경영하며 농사를 짓던 부농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6·25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부모를 잃고 떠도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김 영상필름을 보게 됐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팠던 그는 한국으로 와 8명의 전쟁고아를 미국으로 입양해갔다. 대부분이 혼혈아였다. 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전 재산을 팔아 한국에 ‘홀트양자회''라는 보육원을 세웠다.

그러던 1964년 4월28일,그 날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온 손님들은 아이들을 한 명씩 눈여겨보며 입양할 아이들을 선택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양부모를 만나 새 보금자리로 떠났고 홀트 할아버지는 이들을 돕기 위해 눈코뜰새 없었다. 공항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고아가 된 후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해준 할아버지. 그의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그때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홀트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석춘아,네 곁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다는 걸 잊지 말아라. 고아가 된 건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더 불행해져서는 안된다. 희망을 갖고 앞날을 개척해야 한다.”

홀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홀트 할머니와 말리 누나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당시 한국인들은 입양을 꺼렸다. 자기 핏줄이 아닌 남의 아이를 데려가 호적에 올리고 키우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고아들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하나둘 입양되어 갔다. 나도 다른아이들처럼 미국으로 입양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처럼 지내던 진남이가 미국으로 입양됐다. 홀트 할아버지와 헤어진지 3년도 채 안됐는데 친동생처럼 지내는 진남이와도 헤어져야 했다. 미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 진남이를 생각하면 기뻐해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