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 방도향선생님 아들 주영이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우수문학도서 독서감상문대회에서 우수상(최우수상 다음)을 입상한것을 알게 되어 읽어보고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한시간만에 완성한 이 글이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네요.. 꼭 읽어보세요...

이하.....................................................................................................

나는 <라구나 이야기 외전> 읽으면서 올 해 여름, 내가 필리핀으로 어학 연수를 떠났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 때 난 내 나름대로 많은 추억들을 필리핀에서 쌓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 -그곳에서 세 달이나 있었으면서도- 필리핀 사람들과의 추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 딴에는 필리핀 문화를 체험한다면서 필리핀 결혼식도, 여러 문화 유적지도 방문해 보았으나 내게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방문한 나라는 필리핀이었는데 만난 걸로 기억되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한국인이었다. 난 이런 내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가 무엇이었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답을 던져 주었다.

<라구나 이야기 외전>은 필리핀 유학생들과 필리핀 현지의 가정부, 또는 서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유형을 갈등들을 단편 소설로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 한국 유학생들과 홈스테이 경영자들은 무자비했다. 그것도 가장 약한 필리핀 가정부들, 빈민층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당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나라에 찾아온 낯선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폭력에 그들은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책에서 누군가는 이 폭력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에 쓰여 있지는 않으나 그 저항의 대가는 그들의 저항의 곱절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폭력을 가했던 사람은 힘이 세고 돈이 많지만 그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 배웠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필리핀 서민들은 다시 식민지 시민들처럼, 오히려 그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을 압제하던 우리 한국인들도 그렇게 잘난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들의 나라에서는 그들도 단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2류’, ‘3류’일 뿐 이었다. 그렇지만 그 한국인들은 적어도 여기 나오는 필리핀 사람들보다는 잘 살았다. 자신들도 약자이지만 상대적으로 더욱 약자인 아니 우리가 아는 최약자라고 할 수 있는 필리피노들을 무시했고 깔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난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약자이면서 자기보다 더욱 더 약자인 자들을 무시하는 비겁한 짓을 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을 말이다. 한국에서 느꼈던 사회적 강자들의 무시와 차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항상 강자는 약자를 무시하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무시와 차별을 우린 고스란히 필리핀 사람들에게 돌려주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싸워야 하고 투쟁해야 할 사람은 바로 약한 자를 무시하는 부조리한 사회인 것이다. 우린 옳지 못한 사회에서 얻은 분노를 옳지 못한 곳에다 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만일 필리핀 사람들 중에서도 돈이 많고 그 사회 속에서는 상위 계층에 속한다면 과연 그 사람을 차별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필리핀 사람이 대단해도 우리의 눈 속에 필리핀 사람은 필리핀 사람, 그 뿐일 것이다. 사실 우린 필리핀 사람 그 자체를 무시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그들을 열등하다고 느끼고 우리들만의 우월의식을 느낀다. 단지 그들이 느려서? 피부가 검고 별로 아름다운 점이 보이지 않는 외모를 가져서? 여기서 우린 한가지를 착각하고 있다. 우리가 필리핀 사람들을 무시하는 모든 이유들은 다 우리보다 열등해서가 아닌, 우리와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만일 그들이 우리보다 못하다면 우리 풍토 속에서는 그것이 우리에게 그들을 무시할 이유를 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보다 못한 것이 없고 우린 편견 속에서 다름을 열등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다름이 무시의 이유가 된다면 필리핀 사람들도 우릴 쉽게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그러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사실 문제는 모두 다 우리 속에 있다. 우린 자본 하나만으로 필리핀 사람들을 쥐락펴락 한다. 그들의 소중한 삶과 가정을 가지고 우리들의 모순 속에 빠져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한 잘못이다. 그것도 매우 큰 잘못이다.  

한국도 필리핀처럼 못 살던 때가 있었고 필리핀도 한국처럼 부유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필리핀은 우리에게 그러지 않았다. 우리 한국인 이주민들을 차별 없이 대하고 가난이란 이유로 무시하지 않았다. 50년이 지나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우리들이 그들 위에 서게 된 것이다. 단지 부유해진 것뿐인데도 우린 스스로 그들 위에 군림했다. 그 전의 일들은 다 잊어버린 체로 말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겸손과 용기라고 생각한다. 굳이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부드럽게 대한다는 말로는 충분할 것이다. 무시당하는 약자를 보살펴주고 약자를 무시하는 사회에게는 대항하는 의식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전형적인 약자의 예이다. 약한 것이 없는데도 그곳의 작은 한국 사회가 약자로 몰아가버린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린 이들을 두고 보기만 하면 안 된다. 우리도 책임을 느끼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야 마침내 처음 했던 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내가 그들을 무시했던 이유에서였다. 그들을 지극히 작은 존재로 보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풍경의 일부분으로 보았던 것이었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겸손과 용기’라는 선물을 주었다. 굳이 다시 필리핀에 가지 않더라도 내가 무시했던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의미로 나 스스로라도 약자에게 겸손하게, 강자에게 용기 있게 살고 싶다. 더 이상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게, 또한 이 이야기들이 우리 속에 단지 ‘외전’ 으로만 기억되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