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밤섬이 낳은 성인 자매

한강의 남북 양쪽을 따라 놓인 88도로와 강변 북로,

그리고 마포대교나 서강대교를 다니시는 분들은 지금은

한강 중간에 무성한 숲의 덩어리 정도로만 남아 버린
밤섬을 보실 것이다.

나무만 무성한 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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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강 생태계의 보고라던가 철새의 낙원이니 하는
자연의 관점으로만 이목을 끌고 있지만 이 섬에는 엄연히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았었고 그들 역사의  기록이 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밤섬이 여의두 윤중제(輪中堤)로

둘러지고 도심지로 개발되기 전 그 원형을 본 일이 있었다.

기와집들이 있었고 바위 언덕이 섬 중앙에 우뚝 솟아있었다.

그 작은 바위 언덕 중간에도 집이 있었다.

옛 기록을 보면 밤섬 주변은 백사장으로 둘러싸여 경치가

좋은 곳이라고 되어 있었다.

내 기억에 남은 밤섬은 물과 암석과 나무로 아기자기하게

구성 되어있던 아름다운 섬이었다. 한국화의 모티브가 될

산수화적 기본을 잘 지니고 있는 섬이어서

잘 꾸미면 지금 한강의 명승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포 쪽은 한강으로 막혀 있으나 한강 물이 많이 빠지는 계절에는

걸어서 영등포까지 다닐 수가 있었다.

주민들 400여명은 1968년2월, 마포쪽으로 이주 당하고 섬은 없어졌다.

비용 절감과 공기내 완성에 급급했던 공사 시행 당국이
여의도 윤중제를 만든다고 섬을 모두 폭파해서 골재를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홍수시에는 물길에 방해가 된다는 변명도 있었으나 여의도 쪽을

섬의 용적만큼 안으로 쌓고 섬 주변을 준설했더라면
해결 될 문제였는데 결과적으로 아쉽게 되었다.

개발 절대 우위 논리로 미래의 엄청난

서울시 자산을 날려 버린 단견의 정책을 실행해 버린 것은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탄식하는 실수였다. 

서강 대교위에서 본 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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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섬의 태반이 깎여져 나가고 초목만 무성한 이 섬에서

성인, 영어로 이야기 하자면 이름 앞에 세인트[Saint]라는

칭호를 붙은 인물이 두 명이나 나왔다.

두 사람은 자매로서 조선 헌종 때 꽃 같은 나이로 무참하게

순교했던 김효임 콜룸바, 김효주 아네스 자매다.

두 자매는 순교한지 150년이 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한국을 방문 했을 때 다른 102위의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諡聖)되었었다.

내가 이들 자매의 이름을 처음 접했던 것은 십 여 년 전이다.

시장에 갔다가 효주 아네스라는 낯선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 아주머니를 만났다.

천주교에 무지했던 나는 세례명이란 요한이나 베도로나 안나나 이런

성서의 이름들만이 쓰이는 줄 알고 한국 이름이 분명한 효주라는

이름이 포함된 그 세례명이 괴상하게 들려서 물어 보았다.

“효주? 아줌마 왕년에 절에 계셨나? 아네스면 아네스지, 앞에

 한국 이름은 뭐요?“

그 아주머니는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 왜 그리 뭘 몰라요? 효주가 우리나라 성인이여. 성인 --

  효주 아네스라는 여자 성인이 있었다고요.“

듣기를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더 말을 나누지 않고 헤어졌었다.

살기 바쁜 세상에 그저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직장 선배의 따님이

결혼식 때문에 한강변에 있던 모 천주교 성당을 가게 되었다.

그 곳은 옛날에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던 유서 깊은 자리라서

성당 자체의 순교 박물관이 있었다.

박물관을 찾은 나는 여기서 비로소 효주 아네스라는 이름의
성인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소개의 글을 다 읽고 종교를 떠나서 슬프디 슬픈 순교의 사연에

눈물 같은 안개가 가슴에 스미는 감정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추가로 조사한 내용을 더 해서 여기에 신앙을 위해서

불쌍하게 하늘로 간 두 자매의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두 자매의 이름은 언니가 김효임 콜룸바, 동생이 김효주 아네스였다.

두 사람 다 여섯 남매의 넷째와 다섯째로서 밤섬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한 살 터울인 두 자매의 아버지는 부유했다고 한다.

둘 다 딸들인데도 효임 효주라는 유교의 가치인 효자를 넣어서 지은

격식있는 이름으로 보건데 배움도 있었던 집안 같았다.

밤섬에 살면서도 부유 했다는 것은 아버지가 앞 마포 나루와
관련된 장사나 객주 같은 사업을 했거나 밤섬이 번창 할 때
밤섬 사람들이 많이 하던 해상 운송업 또는 조선업을 하던
사람으로  것으로 생각된다.

마포 나루는 지금은 강변 북로와 마포대교, 그리고 아파트 들에
의해서 완전히 자취가 사라졌지만 근세 조선 시대 한강 상류와
서해로 들어오는 물류의 집합지였고 흥청거리는 한양의 출입구였다.

여기서 출발하여 제주도도 가고 중국도 갔었고 상류로는

영월 단양 같은 곳에서 임산물과 농산물이 내려오기도 했었다.

한강 공원의 자전거 도로가 된 마포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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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임와 효주 자매는 천주교에 극히 배타적인 아버지가 작고하자
중국인인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두 자매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동정녀로 살기로 서약하고

이를 충실히 지키며 신앙과 전도의 길을 갔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선행을 쉬지 않아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순조 때인 일어난 기해 박해를 피하지는 못했다.

두 자매는 서울　북쪽 용미리로 이사해서 살면서 전도와

병자나 불행한 사람들을 돌보는 선행을 계속하다가
1839년[헌종]4월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두 자매는 지금 동아일보사 뒤 광화문 전화국이 있던
서린옥으로 끌려갔다.

포도청은 두 자매에게 배교하고 천주교를 버리면
살려준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순교자들이 그렇듯 두 자매는 끝내 배교를 거부하였다.

두 자매는 인두로 몸을 십여 곳을 지지는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자 포도청은 나쁜 귀신을 쫓는다고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자 두 사람을 벌거벗겨 남자들만이

우글거리는 옥에 넣었다.

죄수들은 이 못된 해프닝에 어리둥절하다가 모두 바로 돌아 앉아서

두 자매를 보지 않았다. 그들도 인간이었던 것이다.

형조 판서가 직접 문초를 했을 때 효임은 겸손하고 영리하게
대답을 하여 형조판서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더해서 포도청에서 당했던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서
항의를 해서 악행을 가했던 포졸들이 모두 귀양 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두 자매는 형조에 넘어 간 뒤에 더 이상 고문을 당하지는 않고
고문으로 병이 들대로 든 육신을 간수하며 치명의 날을 기다렸다.

배교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형조는 두 자매를
다른 배교 거부자들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하였다.

동생 김 효주 아네스가 1839년 9월 3일 순교자 5명과 먼저

세상을 떴고  언니 김효임은 20일 뒤인 1839년 9월26일

다른 순교자 8명과 함께 동생의 뒤를 따랐다.

언니가 스물 다섯, 동생이 스물 넷의 꽃다운 나이들이었다.

김효임 [오른쪽] 김효주 [왼쪽]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