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축복

  물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지내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더 불행했다. 엄마는 항상 병석에 누워계셨고 학교가는 나와 동생을 위해 밥도 해줄 수 없었다. 아빠는 농사일 하랴 엄마 병시중 들어주랴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하다보니 우리 남매에게 관심을 쏟지 못한것도 이해할 수 있으련만 어린 나로서는 그게 불평이었다.

  난 학교에서 그 누구보다도 공부를 잘했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면서 한번도 일등의 자리에서 밀려나 본적이 없었다. 학교서 친구들도 잘 사귀었고 선생님들도 너무나 많이 이뻐해주셨다. 그래서 기말에 한번씩 열리는 가장회의에 가면 나의 부모는 어깨가 으쓱하련만...엄마는 아파서 못 가고 아빠는 갈 마음이 없다고 안 가셨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남는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생이 되었다. 중간시험 보고 담임선생님은 가장회의 한다고 통보했다. 첫 번째 회의인것만큼 중요하니까 한 사람도 빠짐없이 꼭 참석해야 되며 만약 어느 학생의 부모가 참석하지 않으면 이튿날에 그 학생을 집에 돌려보내서 부모님 다시 모시고 오게 하겠다고 한다. 물론 난 이번에도 1등이었다. 당연히 가려니 생각하고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더니 처음에는 간다더니만 정작 갈 시간이 되니 안 간단다. 그때 엄마는 아빠랑 싸우고 어딘가에 가버린 것이다. 우리 집은 항상 이랬다.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땐 앓는 사람이 있으니 집안 분위기가 침침하고, 엄마가 좀 괜찮아지면 무슨 문제 가지고 그렇게 싸우는지 아빠랑 맨날 싸웠다. 그리곤 집 나가고 했었다. 엄마는 가난에서 허덕이는게 싫은거였다. 하지만 그 가난이 엄마 병 때문에 야기된 것은 왜 생각지 않을가? 어쩌면 생각은 하겠는데 그래도 그때 너무나 가난한 현실이 싫었던 거라고 이해하고 싶다.

  끝내 아버지는 가장회의에 가지 않았다. 나는 혼자 밖에 뛰쳐나가서 울었다. 너무나 슬퍼서 목이 쉴 정도로 울었다. 세상이 너무 싫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모자라게 사는 것도 아닌데 외계의 환경은 항상 날 뒷받침해주지 않았다. 다른 부모들은 만약 자녀가 성적도 1등이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인정받고 하면 가장회의같은 자리에 너도나도 가고싶어하련만 우리 집에서는 이런 자그마한 요구 하나조차도 들어주지 않는다. 난 내가 뭐가 부족해서, 아니면 뭘 잘못해서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그러한 가난을 겪어야 하고 맨날 엄마 아빠의 싸움 소리에서 자라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세상이 불공평하게만 느껴졌다.

  어느덧 중학교 3년의 생활은 끝나고 고등학교 시절이 되었다. 집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인지라 3학년때 공부를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완전히 놓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고등학교에 붙기 위해서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우리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은 항상 날 찾아와서 상담을 해주셨다. 날 위한 것도 있겠지만 어쩌면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그때 중점고등학교 입학경쟁율이 아주 심했는데 높은 성적으로 그 학교에 입학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학교의 욕심이고...그것이 나한테 동기를 불어넣어줄 순 없었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제때에 가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런 어머니 옆에서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쳐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한테 답은 너무나 뻔했다. 내가 높은 성적으로 입학한들 무슨 소용이랴. 입학금, 기숙사비, 생활비...이러한 것들은 우리 집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냥 책을 놓지 않을 정도만 공부했다. 열심도 욕심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시간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길 따름이었다.

  이런 날 담임선생님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3학년 마지막 학기에 날 불러다 선생님 집에서 생활하게 했다. 집에 하루라도 안 있고 살다보면 그래도 생각이 변하지 않을가 싶은 생각에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고마울 리가 없다. 선생님도 결코 풍족한 살림은 아니었는데... 하나님은 벌써부터 내 주위에 주님의 천사들을 심어놓은 것이다. 비록 난 그때 깨닫지 못했지만.

  그렇게 공부를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5백여명 되는 학생중에서 난 23등의 성적으로 중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무튼 기뻤다. 학교 가고 못가고는 뒤의 일이지만 그래도 입학했다는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개학이 되었는데 예상대로 우리 집엔 돈이 없었다. 입학날이 다 되었건만 난 학교 갈수가 없었다. 등록을 못했으니까.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 정문까지만 갔다왔다. 웃음꽃이 활짝 펴서 교문에 들어가는 학생들 얼굴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모른다. 세상에 그들이 제일 행복한 사람 같았다. 그러면서 난 왜 항상 이렇게 버림받는 것일가 서러움이 확 몰려왔다.

  난 기적을 몰랐다. 그리고 신의 존재는 더구나 몰랐다. 그런 것은 나한테 다 부질없는 것으로만 느껴졌었으니까. 신의 존재를 알았다면 아마 나쁜 일도 안하고 다른 사람 해하지도 아니한 나한테 왜 이렇게 참혹하게 대하냐고 따져 물어봤으리라. 어린 나이에 난 가난이 가져다주는 그런 처절함을 너무나 절실히 느꼈다. 엄마가 아파서 쓰러져 있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했던 일이며, 병세가 심해졌을 때 따로 방법이 없어서 집에 돈 될만한 것은 다 팔아서 병원비 마련했던 일이며, 또한 지금처럼 돈이 없어서 학교 문도 들어갈 수 없는 일이며...또 세상이 절실히 싫어졌다. 세상이 또 나를 버렸다는 느낌에 절망감만 몰려올 뿐이다.

  그런 나에게 기적이 나타났다. 아니,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다. 한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인데 나한테 봉투 꺼내주시면서 학교가서 등록하라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교회 다녔기 때문에 그분이 선교사라는 것을 알고있었고 엄마와 가끔씩 만나기 때문에 좀 알고는 있지만 필경 친분이 두터운 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한테 등록금을 건네준다. 내가 평생 만져보지도 못했던 거액을. 물론 다른 사람한텐 그 돈이 그렇게 큰 돈으로 안 보일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평생 처음으로 만져보는 거액의 돈이다.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친척들도 몰라라 한다. 누구하나 도와주려는 눈치도 없다. 그런 현실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 그러니까 난 당황하기만 했다. 일단 학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긴 했지만 내가 언제 돈 벌어서 이 돈을 갚냐 하는 생각에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래서 못 받는다고, 언제 갚을지도 모르는 돈을 빌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분은 빌려주는게 아니라 주는거라면서 갚을 필요가 없단다. 가서 등록하고 공부 열심히 하면 그것이 갚는거란다. 나는 세상에 이런 계산방법도 있는줄 몰랐다. 여태까지 들어보지도 봐오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난 그분과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분이 말하는 예수님에 대해선 처음부터 쉽게 접수할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있던 지식과 배제되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나 지식적으로, 내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예수님을 난 그 선교사님의 삶을 통하여 마음으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경배하고 찬미하고 있었다.

그분은 나 말고도 여러 학생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이 어려워서 공부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거기에 내가 감동 먹은건 결코 아니었다. 마음이 좀 너그럽고 돈에도 여유가 있고 한 사람이면 그런 일 정도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난 그분의 삶을 통하여서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난 그분이랑 함께 있으면서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을 가지게 되었고 비록 몸이 다른 사람보다 좀 약한 편이긴 하지만 사지가 건강하다는게 그렇게 감사로 다가올줄은 몰랐다. 난 20여년을 손바닥만큼한 침대를 벗어나보지 못한 언니를 만나게 되었고, 20여년을 누워서 움직이지 못해서 살이 다 썩어서 뼈가 다 드러나고 대소변도 제대로 배출할 수 없어서 튜브로 배출하는데 썩은 살에서 여전히 고름이 배여나오는 사람을 목격하게 되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그동안 불평하면서 살았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러한 사람들을 선교사님은 섬기고 계셨다. 또한 그분들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나에게 조용히 말씀해주셨다. “네가 다른 애들보다 어려서부터 고생한건 알아. 하지만 저런 분들을 만나보니 어때? 그래도 니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니? 건강은 하나님이 준 축복이고 또한 우리에게 건강을 준건 우리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준 것이 아니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섬기라고 하나님이 축복 주신 것이라는걸 기억해야 해”

또한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애가 있는데 정신연령은 3살도 안된다. 부모님의 이혼과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는 충격 때문에 정신에 이상이 온 이 여자애는 자기학대가 심해서 몸 곳곳에 피가 흥건히 고였건만 여전히 손으로 자기 살을 집어뜯었고 나중엔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여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애 아빠는 처음에는 옷도 갈아입히고 그러다가 나중엔 힘에 겨워서 아예 방 한구석에 처박아놓고 관계하지도 않았다. 집에는 오물 냄새 때문에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고 오물을 제때에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애 살은 다 썩어들어갔고 사람은 여윌대로 여위어서 진짜 뼈에 가죽밖에 남지 않았다. 부모도 포기하고 버린 애를 선교사님은 집에 데려다가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부었다. 금방 데려왔을 때는 몸에 너무 힘이 없어서 물도 자기절로 넘기지 못했고 밥도 씹어먹을 수가 없었다. 날마다 몇 번씩 대소변 때문에 몸을 씻겨줘야 했고 물 한모금, 밥 한 숟가락 먹이는 것도 전쟁이었다. 함께 그애 대소변 뒷시중하면서 난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봤다. 꼭 새벽에 대소변을 봤고 그랬기 때문에 난 그 긴장한 시험 기간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그 애 목욕시켜주고 해야 했다. 그런 악렬한 환경이었지만 난 우수한 성적으로 중점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렸을 때였지만 난 비교적 이성적인 편이었다. 그런 내가 만약 선교사님을 만나지 않고 그냥 교리적인 설교만 들었다고 하면 아마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너무나 기가 막힌 분이시다. 그는 나의 사정을 잘 아시고 선교사님을 나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그가 장애인들을 보살피면서 지낸 에피소드들은 쓰려면 너무나 길다. 오늘은 일단 내가 어떻게 선교사님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만나게 된 것을 일부분이나마 기록했다. 선교사님은 나에게 정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였다. 그를 만나면서 내 인생은 변했고 내 인생에 대해서 불평하던 태도로부터 감사하는 태도로 변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날 너무 사랑하신다. 백프로 그 사랑만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겠지만 내 평생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면서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