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 여가 지난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구급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었지요.

거의 매주 화요일이면,

서울역, 영등포역, 청량리 역 혹은 전국을 돌며

길거리에서 지내는 노숙자 분들을 뵙고

모실 수 있으면 모신답니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꼼짝 못하시던 할아버지...!

벌써 동상이 심하신 지...

한쪽 다리가 썩어들어가

왼쪽은 거의 무릎까지 새까만 장작이 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현대판 고려장처럼 버려지신 님을 뵈면서...

길바닥만큼이나 차갑게 얼어붙은 자식들의 마음에

화도 나고 슬펐는지요...

그분을 병원(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 모시고서...

제게 주어진 방학기간 동안 보살펴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계셔서

오랫동안 그분 곁에 머물진 못했는데도...

그분의 마음과 말씀들은 이미 제 삶을 변화시키고 있었음을...

...그분의 별명은 '하회탈'이 되었습니다.

정말 하회탈과 꼭 닮을 정도로 눈이 안 보이는 웃음...

제겐 놀라운 광경이었답니다.

매 시간 다리를 약으로 씻어내고

진물로 엉겨붙은 붕대를 떼어내고...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한번도

잃지 않으셨던 그분의 웃음 앞에서...

그분은 세 마디 말씀을 꼭 덧붙이셨습니다.

첫번째는

"이봐요, 이불 좀 덮어줘유. 춥지만 않으면 다행이에유!"

흘러내린 이불을 잘 덮어드리고 나면,

두번째는 "고마워유!"

인사 드리고 돌아서서 나갈 땐,

"사랑해유!" 하셨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면,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고이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할아버지, 차라리 아프다고 소리치시면 마음이 더 편할 텐데...

그러나, 오래된 병 탓인지

오래 지나지 않아

임종을 준비해야 했던 그 며칠 전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답니다.

"고마우이! 나 이제 갈 때가 됐어유!

그런데 너무 기쁘게 갈 수 있게 도와줘서 진짜 고마우이!

사실 난 내 삶도 쉴 틈 없이 자식들 키우느라 애썼는데...,

이렇게 추운 데도 오갈 데 없게 되다 보니 괴롭고 죽고 싶었지,

그런데 여기 와서 난 새로 자식들을 얻은 것 같아유!

아, 힘든 데도 이렇게 잘해주는 양반들 안 만났으면 난 벌써

하늘로 갔을 거여.

뭐, 들으니까, 결혼도 안 하고 이렇게 우리 같은 사람 위해

산다더구만, 이 많은 젊은이들이 말여.

나 이제 용서할겨.

나 버린 자식들 다 용서할겨.

나도 이젠 사랑받을 수 있다고! 같이 웃어줄 사람 있으니까 됐다고!

나도 세례받을 수 있나?

잘 몰라도 하느님 믿고 눈 감아야 될 것 같여!"

그래요, 할아버지!

불평 한 말씀 없이 '춥지만 않으면 다행이에유' 하고

웃음짓던 당신의 마음,

고마워유, 사랑해유 하며 병원 안에선 땀을 훔치는 저희들을

위로해주시던 당신의 넉넉한 사랑...

그리고 예수님을 닮은 용서...

잊지 않을 겁니다.

얼마전 강론을 준비하면서

되뇌어보았던 할아버지와의 찐한 추억...을 이 곳에 실어보았습니다.

돌아가신 그분의 평온한 시신을 정성스레

닦아드리고 기도드리면서

(저희는 가족을 모시다 돌아가시면 직접 염 해드리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드리며 기도드린답니다)

참으로 용서한 이가 맞는

아름다운 삶의 마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면,

"아, 제가 이 길을 걷는 것만 해도 축복이에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 고마워유!"

"(모든 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해유!" 하고 고백할 수 있겠지요.

세상 모든 것을 다 얻는다해도

사랑과 용서에 비하면

그 돌아오는 몫이 너무 작을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