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사상 처음으로 2차 시험에 합격한 시각장애인 최영씨가 21일 서울 신림9동 고시원 방에서 합격 소식을 들은 뒤 활짝 웃고 있다. 김세구기자

ㆍ시각장애인 첫 사법시험 2차 합격 최영씨

사법시험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2차 시험에 합격했다. 1947년 법조인 선발시험이 시작된 이래 61년 만에 처음이다. 주인공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최영씨(27).

2002년부터 5차례 사법시험 1차에 응시했으나 시각장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연거푸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뒤 지난해 1차시험 합격에 이어 올해는 2차시험마저 통과했다. 마지막 관문인 3차 면접시험이 남아 있긴 하지만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으면 최종 합격하는 점을 감안하면 '5전6기'로 법조인 등용을 눈앞에 두게 됐다.

시각장애 3급인 최씨는 완전실명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것은 물론 보조자의 도움 없이는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시력이 나쁘다고만 여겼던 그는 고3 대학입시가 끝나고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3급이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았다. 날이 갈수록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2000년 대학에 들어가 2002년 사법시험을 보기 시작할 때만 해도 희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2005년부터 급격히 시력이 나빠져 책을 보는 게 불가능해졌다.

"다른 살길을 찾기 위해 장애인 직업재활센터에서 교육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경남 양산에서 일용직 일을 하는 부모님이 어렵게 벌어 매달 보내주시는 50만원의 생활비를 생각하면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음성 교재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있고 일본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시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최씨는 법전과 법학 교재를 음성 파일로 만들어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반복해 들으며 공부했다.

그리고 이듬해 사법시험부터 시각장애인들이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장착된 컴퓨터를 통해 시험을 볼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최씨는 도전을 시작했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어머니는 "잘했다, 잘했다"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음성 파일을 수십번, 수백번 들어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최씨는 판·검사보다도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정부의 정책자문을 한다든지,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며 장애인들도 사회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단다.

"시험 준비를 하느라 시력을 잃고도 재활교육을 받지 못해 보행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갈 걸음마 연습부터 해야겠습니다."

최씨는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기의 꿈을 찾아 나가길 바란다며 환하게 웃었다.